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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간디처럼 혁신적인 방법으로 싸우는 법

◆◇○◎ 2022. 2. 6.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이번 정거장은 인도의 간디입니다. '간디처럼 싸우는 법'이라는 소제목에서 걷고, 보고, 듣고, 후회하지 않는 법처럼 다른 철학자를 설명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조금은 현실의 치열함에 바탕을 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간디처럼 싸우는 법

하지만 간디가 창조적이지 않다는 것은 잘못된 결론이다. 일반적인 방식과 달랐을 뿐, 간디는 창조적인 사람이었다. 간디의 붓은 결의였고, 간디의 캔버스는 인간의 마음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악에 맞서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다.” 모든 폭력은 상상력의 실패를 나타낸다. 비폭력은 창조성을 요구한다. 간디는 언제나 새롭고 혁신적으로 싸우는 방법을 찾아 헤맸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p. 267


이 책의 저자인 에릭 와이너는 인도 특파원 시절 3년 동안 간디에 대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합니다. 몇 권으로 시작한 책은 간디와 관련된 책으로 한 서가를 가득 채울 정도가 됐다고 해요. 그 시절에 만난 '하인' 카일라스와의 동행과 처음 만남의 회상 등 그의 이야기도 '간디처럼 싸우는 법' 챕터의 이야기 중에 포함이 되었습니다. 도움을 주던 하층 계급의 어린 소년이 이제는 성장해서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중산층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보여줘요. 간디의 사상을 충실하게 뒷받침해주는 것이 '인도'라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배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노프러블럼'이라고 대답하지만 항상 결과는'빅프라블럼'이 되는 인도의 생활. 챕터의 시작과 마지막은 작가의 욕망에서 시작된 '요가 익스프레스'기차표를 사기 위한 자신의 투쟁(?) 또는 싸움(?) 혹은 결정의 과정들이 어떻게 끝을 맺는 지로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간디는 투사였다. 그는 영국과 싸웠고, 편협한 외국인 및 인도인과 싸웠다. 목소리를 내기 위해 싸웠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싸움은 싸우는 방식을 바꾸기 위한 싸움이었다. <...>제대로만 하면 싸움은 생산적이다. 양쪽이 윈윈 하는 해결책에 다다를 수도 있지만, 애초에 싸우지 않았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해결 책에 다다를 수도 있다. 동점은 끝났지만 경기장이 전보다 더 푸릇푸릇하고 건강해진 축구 경기를 떠올려보라. 간디는 싸움을 필요악이 아닌 필요선으로 보았다. 우리가 잘 싸우기만 한다면 말이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p.274


이번 챕터를 읽는 내내 '싸움'을 '결정'으로 변환한다면 이치에 맞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싸움의 방식을 바꾼다는 것은 자신이 요구하는 목표에 대한 프레임을 전환하고 자신의 욕망을 다시 둘러보면서 더 좋은 결정을 어떻게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이 요구되는 것과 뜻이 맞닿아 있습니다. 비폭력적인 싸움의 방식은 당장은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냈지만 긴 시간을 두고 봤을 때는 결국 영국의 우위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으니까요.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기타와 '결정'

간디는 결과를 지향하지 않았다. 과정을 지향했다. 그는 인도의 독립이 아닌, 독립할 자격이 있는 인도를 추구했다. 일단 인도가 독립할 자격을 갖추면, 잘 익은 망고가 나무에서 떨어지듯 자유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간디는 이기기 위해 싸우지 않았다. 자신이 싸울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싸움을 싸우기 위해 싸웠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과정 중심적인 접근법이 결과 중심적 접근법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p. 280


이번 챕터를 읽으면서 얼마전에 읽은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애니 듀크 지음)란 책이 떠올랐습니다.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삶을 포커 플레이와 비교하며 불확실한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에 관한 내용의 책입니다. 이 책에서도 '결과'에 연연하기보다는 매번 내가 올바른 과정을 거쳐서 그 결정을 하게 되는지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고 합니다.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편향이 발생되기 때문에 한마디로 흑과 백을 가리듯 한쪽으로 치우치기보다는 '몇 퍼센트의 확률로 어떻게 일이 진행될 것'이라는 식의 사고를 할 때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해요. 불확실성을 항상 상정하는 것이죠.

듣는 사람은 당황스럽지만 항상 '노프라블럼'을 말하는 인도 사회에서는 아마도 이런 종류의 불확실성을 상정하고 시험하기에는 최적의 장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싸움의 과정과 결과

간디는 피비린내 나는 수단을 이용해 인도의 독립을 쟁취하느니 계속 영국의 속박을 받는 것이 낫다고 보았다. 간디는 "구덩이 안으로 내려가지 않고 구덩이를 팔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말했다. 다른 이를 잔인하게 대하는 사람은 곧 스스로를 잔인하게 대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혁명이 결국 실패로 끝나는 것이다. 수단과 목적을 혼동한 사람은 스스로를 집어삼킨다. 간디가 보기에 목적은 절대로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했다. 수단이 곧 목적이었다. “불순한 수단은 불순한 결과를 낳는다. 정확히 뿌린 대로 거두게 되는 법이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p.285

 

폭력과 상상력

비폭력 저항이 언제 어디에서나 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고 해서 간디의 사상 자체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간디가 말한 사랑의 법칙은 중력보다는 무지개에 가까울지 모른다. 특정 조건에서 아주 가끔씩만 보이지만 한번 나타나면 그 무엇보다 더 아름다운 무지개 말이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간디처럼 싸우는 법 p. 289

 

대부분의 폭력은 부도덕한 충동이 아닌 상상력의 부족에서 비롯된다. 폭력적인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힘들게 노력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주먹을 날리거나 총에 손을 뻗는다.

간디처럼 싸우는 법 p. 290


폭력적인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다. 게으름을 넘어서 성실하게 폭력을 배제하는 것은 상상력의 영역이며 간디가 말한 사랑의 법칙, '진정한 아름다움은 악에 맞서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다.'란 문장을 생각해보면 악한 일에 창의적으로 맞설 때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날 것이라는 비유는 비폭력은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 모호하지만 신비로운 무지개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상상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가 익스프레스와 라즈다니 익스프레스

어떻게 싸우는 가가 무엇을 두고 싸우는 가보다 더 중요하다. 나는 잘 싸웠다. 부당함을 인식하고 그에 맞섰다. 인디언 레일웨이라는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에 맞서 창의적으로, 또 깨끗하게 투쟁했다. 정말로 그러고 싶었지만, 폭력에 의지하지 않았다. 결과는 내가 원한 것과 달랐지만 내 괴로움의 뿌리에 있는 것은 결과가 아닌 나의 욕망이다. 게다가 나는 앞으로도 싸울 일이 많을 것이다. 싸울 일은 언제나 있다.

간디처럼 싸우는 법 p. 302


이야기의 끝은 자신이 상상력을 발휘하며 싸웠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줍니다. 요가 익스프레스를 추구했지만 라즈다니 익스프레스를 타는 것으로 결말을 맺습니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중 '추구의 플롯'을 설명한 부분이 떠올랐습니다.

'추구의 플롯'에서는 주인공이 결말에 이르러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그것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다고 하지만, 여행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뜻밖의 사실'이나 예상치 못한 실패, 좌절, 엉뚱한 결과를 의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정해진 일정이 무사히 진행되기를 바라며, 안전하게 귀환하기를 원한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그야말로 '뜻밖'이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걸 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행의 이유 p.22


싸움의 방식을 변환하고 서로의 싸움에서 더 좋은 점을 찾아내는 것이 뜻 밖의 것을 얻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랜 소피스트 철학자들의 말처럼 결국 요가 익스프레스를 타기 위한 노력들은 모두 욕망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깨닫는 결말은 책,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가 철학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책의 서문에 밝혔듯이 삶의 의미를 추구하기보다는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철학자들이라는 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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