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 성석제, 바보가 전한 말
성석제 작가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2000년에 발표된 단편소설입니다. 황씨 집성촌인 신대1리,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황만근은 우직한 바보 아저씨입니다. 기구한 그의 인생을 해학적으로 열거하다, 그의 죽음의 이유를 알아가는 과정에서는 씁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롯이 자신의 책임을 묵묵히 짊어지고 나가던, 인간이 보였습니다.
'농가부채 탕감 촉구 전국농민 총궐기대회'
빚도 지지 않은 황만근이 이 궐기대회를 나가게 된 것은 이장의 간곡한 권유에서였습니다. 농민들이 하는 궐기 대회이니 농민들의 운송수단인 경운기를 몰고 가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한다는 방침을 전달했습니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를 따라 100리 길을 털털 거리는 경운기로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비 오는 날씨도 추웠습니다. 황만근이 군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궐기대회는 끝이난 상태였습니다.
"반편은 누가 반편입니까. 이장이니 지도자니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방침을 정했으면 그대로 해야 지, 양복 입고 자가용 타고 간 사람은 오고, 방침대로 경운기 타고 간 사람은 오지도 않고, 이게 무슨 경우냐구요."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_ p.11
소설 속 황만근의 모습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뿐인 사람으로 나오지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인물은 아닙니다. 자신만의 철학도 있고 좋아하는 것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거리낌 없이 표현하고 남이 꺼리는 뒤치다꺼리를 사람 좋은 웃음으로 합니다. 다른 이의 눈에는 평생 그렇게 남에게 이용만 당했다 할 수도 있지만 그는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끝에는 결국 우직하게 자신의 할 일을 하다. 죽어버린 황만근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이 존재합니다. 애끓는 비통함이 아니라 마을의 궂은일을 할 사람이 없는 것에 대한 가벼운 미련입니다.
황만근에게 주어진 책임들
그의 어머니는 14살의 어린 나이에 이곳 마을로 팔려와서 황만근을 유복자로 낳았습니다. 고운 어머니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어린 황만근에게 모든 것을 의지합니다. 이야기의 서술자인 도시에서 온 민 씨의 눈에는 황만근의 모습이 그의 어머니보다 늙어 보인다고 합니다. 황만근은 저수지에 뛰어들어 자살하려는 여인을 구해준 것을 인연으로 그녀와 결혼합니다. 농기계 상의 딸인 아내로부터 경운기를 받고 경운기에 대한 모든 것을 배웁니다. 한때는 마을에 유일한 경운기가 황만근에게 있었습니다. 아내는 사내아이를 하나 낳고 집을 나갑니다.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황만근은 아이를 매일 같이 신대 1리부터 신대 3리까지 동냥젖을 먹이고 소젖을 먹여 키웁니다.
황만근이 만난 토끼
토끼를 만납니다. 군입대 신체검사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 토끼 귀신을 만났습니다. 토끼 귀신을 상대로 씨름을 해서 3가지를 얻습니다. 어머니의 장수, 여우 같은 아내, 떡두꺼비 같은 아들. 결과적으로 모두 얻었지만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 모두 책임이 따르는 것들입니다.
황만근이란 캐릭터를 만나면서 존 스타인벡의 '생쥐와 인간'을 떠올렸습니다. 공교롭게도 생쥐와 인간에서 마지막에 죽음을 맞이하는 레니 역시 토끼 환영과 이야기를 합니다. 부드러운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만져버리는 레니에게 토끼는 너무 사랑하기에 죽여버리는, 잡을 수 없는 꿈과 같은 존재입니다. 황만근이 만난 토끼는 그에게 복을 주는 존재죠. 우리의 설화에서 흔하게 나오는 도깨비입니다. 소원을 성취하지만 그 소원들은 모두 책임을 묻는 존재들입니다.
황만근의 세상
어떤 해설들은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가난한 농촌의 아픈 현실과 더 이상 푸근함을 주는 고향이 아닌, 타인의 이익을 가로채는 이기적인 곳으로 묘사합니다. 도시에서 귀농한 민 씨가 황만근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것과 같이 뺏었기만 하는 장소로 보이기도 합니다. 도시라고, 농촌이라고 이타적인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세상이 아무리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더라도 자신을 내놓는 황만근을 부곽 시키는 장치일 뿐입니다.
인간에게는 모두 황만근과 같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순진하고 이타적이고 스스로를 돌보지 돌보기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는 사람. 그 와중에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들을 묵묵하게 수행해가는 사람. 황만근이 민 씨의 눈에는 성인으로 비출 수 있었던 것은 황만근 스스로가 해낸 것이 아니라 그에게 주어진 책임들이 그를 성장시켰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만근이 한 말
"내가 왜 빚을 안 졌니야고. 아무도 나한테 빚 준다고 안캐. 바보라고 아무도 보증 서라는 이야기도 안했다. 나는 내 짓고 싶은 대로 농사지민서 안 망하고 백년을 살 끼라."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_ p38
황만근은 빚을 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빚을 지고 싶어도 빚을 준다는 곳이 없었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빚을 지고 트랙터, 경운기, 이양기를 빚으로 구매하고 농사지어 봐야 그 빚 갚느라고 정신없을 때, 황만근은 어머니를 건사하고 아들을 키워냈습니다. 그를 둘러싼 쉽지 않은 환경이 그를 키워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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