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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죽어야만 편할 수 있는, 우리가 몰랐던 영웅의 모습

◆◇○◎ 2021. 5. 26.

   중앙으로부터 못하나 받지 못했습니다. 군사들을 모집하고, 훈련시켜야 합니다. 군량미를 확보해야 했습니다. 철을 녹여 화포를 만들고 나무를 베어 전선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중앙 정부로부터는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다시 돌아가도 이순신이 영웅일 수 밖에 없는 이유

   임금을 기만한 죄로 체포됐습니다. 조정의 출동명령에 불복했다는 이유였습니다. 후임인 원균은 말린 홍어와 미역을 진상보내기 위해 이순신을 중앙으로 압송하는 함 거위에 실었어요. 이순신은 정치에 능하지 못했습니다. 도성을 버리고 전란을 피해 나주로 평양으로 어가행렬을 이끌고 도망간 임금입니다. 임금은 길삼봉이란 반역자를 찾아 죽임으로써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지탱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길삼봉으로 지목되어 죽임을 당해요. 권력을 확인하는 방법은 자신의 수하를 괴롭히는 것인가 봅니다.  

 

   모진 고문을 당하고 백의종군으로 전장터로 돌아왔을 때, 수군의 전력은 고작 12척의 배가 전부였습니다. 그중 10척의 배는 배설이 칠천량 해전에서 도망쳤기 때문에 무사할 수 있었어요. 한산 통제영을 불 지르고 도망간 자입니다. 자신이 키워왔던 수군의 세력은 볼품없어지고, 모진 고문으로 몸도 성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또 싸워야 했습니다. 권력의 탐욕이 지나친 선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목놓아 울기만 합니다. 명량에서 값진 승리를 거둔 이순신은 다시 세력을 키워나갑니다. 그는 포기란 없어 보입니다.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군량미를 확보하고, 전선을 만들고, 화포 수를 늘립니다. 

 

전쟁의 비참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영웅의 모습. 영웅의 웅장한 서사시를 기대한 독자라면 피비릿내 나는 500년 전의 죽음의 냄새만을 잔뜩 맡게 될 것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꾸역꾸역 읽은 기분이 들었어요. 코 가베인 시체들, 아군인지 적군인지 혹은 백성인지 모를 시체의 목을 잘라 소금에 절입니다. 추위에 얼어 죽고, 왜군의 포로로 끌려가 고된 노역을 하다 죽게 되는 백성들. 방어하는 아군도 침략한 적군도 모두 비참합니다. 바위를 나르다 죽게 되는 왜군의 모습. 목이 베어지는 탈영병. 김훈 작가의 짧고 힘있는, 그리고 독특한 문장은. 1인칭 시점의 소설이지만 생생한 현장을 모든 감각을 통해서 느낄 수 있도록 이순신 본인이 느끼는 오감의 감정을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사실적으로 전달합니다. 피비릿내와 시체가 썩는 불쾌한 냄새들 까지요.  

 

사방이 적으로 둘러쌓인 고독한 이순신 

   이순신의 고뇌와 마주했을 때는 읽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왜 싸워야 했을가요? 이긴다고 하더라도 임금이 그를 두려워해서 버림을 받거나 죽임을 당할 수 있습니다. 길삼봉으로 몰릴 수도 있겠죠. 진다면 자신의 목숨과 함께 자신의 수하와 수많은 백성들이 비참하게 죽게 될 것이 명백합니다. 그리고 명나라 원군. 이제 왜군들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전투의 의지는 없습니다. 임금과 명나라 장수는 섭부른 전투를 하지 말고 적들을 일본으로 돌려보내라 합니다. 하지만 눈앞의 적들은 포로가 된 백성들을 이용해서 눈앞에 산성을 쌓고 있습니다. 함께 공격을 하자는 제안에 소극적이기만 한 천조의 장군. 한차례의 전투를 치르고 공치사를 하는 모습이 여간 눈꼴사나운 것이 아닙니다. 거들먹 거리는 그들에게 이순신은 마음을 의지할 수었을 거예요.   

 

   백성과 임금. 그리고 명나라 원군과 왜군. 그 사이에서 어느 누구도 이순신의 편은 없어보입니다. 중간에 균형을 잡기보다는 자신 혼자만의 의지로 전투를 치러야 합니다. 너무나 고독하고 외로운 싸움입니다. 죽음만이 그를 자유롭게 할 것 같았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힘겨웠던 이유는 노량해전에서 장렬하게 전사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의 좋았던 시절은 있었을 까요? 전투만이 그가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행동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죽음이 그를 고통에서 해방시켜줄 유일한 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순신의 최후 그리고... 

   마지막 장은 정말 덤덤하게 이순신의 최후를 그립니다. 책을 덮는 순간 답답하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죽어야만 자유로울 수 있는 영웅. 자연사하기를 원하는 영웅. 이순신이 정의하는 자연사는 전투에서 죽는 것이었습니다. 소설, '칼의 노래'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영웅의 모습을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낸 인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그리고 자 했던 영웅의 모습은 어디로부터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고독한 인간이었습니다.

 

죽음이 비로소 그를 자유롭게 만들어 준 좋은 죽음이었다고 믿게 됐습니다. 그의 최후가 다행스런 죽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위대한 장군에 대한 존경심보다 외로운 인간에 대한 연민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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