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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장편소설 [완전한 행복] 리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는 서늘한 스릴러

◆◇○◎ 2021. 7. 7.

   '완전한 행복'은 전체 분량이 500페이지가 넘습니다. 이런 책을 이틀 만에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흡입력 있는 문장을 창조해내는 작가의 놀라운 능력 때문이겠죠.

정유정 소설가의 '완전한 행복'을 읽은 것은 습하고 무더운 장마철의 짜증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줄 수 있는 좋은 경험이 었습니다.

잠시나마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분들은 한번 도전해 보시길 바랍니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소개할 생각입니다. 책을 읽으신 후에 이 글을 읽어 주세요.
 

완전한 행복-극단적 나르시시스트의 행복에 관한 정의

 

   초반에 몇 가지 의문점을 가지게 만들어요. '행복은 덧셈이 아닌 뺄셈이야'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 무슨 의미인지 갸우뚱하게 됩니다.

중반쯤...  유나의 주변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면 뺄셈의 정의가 무엇인지 선명해지면서 몸에 소름이 돋더군요.

어린 시절의 버려진 경험에 의해 평생을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피해 의식 속에 살아가는 극단적인 나르시시스트, '유나'가 주인공입니다.

그녀에게 행복은 한 장의 가족사진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 아빠, 누나, 동생 등등의 모든 구성원들이 잘 어울리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을 중심으로요. 그녀는 자신이 만드는 행복한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그 지위를 내려놓게 합니다.

살인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말이죠.    
 

3명의 화자 

 

  • 지유 - 유나의 딸, 유나로부터 억압을 받습니다. 꿈 속에서 되강오리가 우는 소리를 계속 들어요. 그 환청은 본인이 목격한 잔인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무의식이 만들어낸 자기 방어 기제. 종반부에 6살 아이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너무나 끔찍한 사건을 목격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엄마의 영향으로 항상 외롭습니다. 마음 속에서 갈등을 해요.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함은 없어진 채, 너무 일찍 성숙해 버린 아이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픕니다. 일거수일투족을 제어하려는 엄마의 성향, 엄마로 부터 버림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 엄마에 대한 애정, 그러면서도 억압에 대한 반항. 엄마의 영향으로 항상 마음이 복잡해요. 책을 읽는 내내 아이가 하는 생각들, 이야기하는 대사들의 전후 의미를 생각해보면 안타깝습니다. 소설 속 가상의 아이인데도 불구하고요. 
  • 재인 - 유나의 언니. 지유의 이모. 지유가 재인에게서 엄마로부터 느끼지 못하던 포근한 모성의 정을 느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몇 년 동안 사랑했던 남자가 자신의 동생과 결혼합니다. 언니의 불행을 계획한 유나가 제인의 애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듯합니다. 직업은 기자. 동생에 대한 불편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 은호 - 유나의 현 남편. 재혼을 했기 때문에 결혼생활에 실패하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아내인 유나의 행동에 맞서지 못하고 항상 소극적으로 대처합니다. 안간힘을 써서 서로의 멀어진 간격을 봉합하려고 노력하지만 그 방법이 방치와 무관심, 잘못된 행동에 대한 허용으로 나타납니다. 전처와의 사이에서 아이, '노아'를 얻었지만, 아이는 자신과 함께 잠자는 사이 의문사합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유나 주변 사람들의 죽음들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요. 이때부터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른 물살을 탑니다.      

   작가의 말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주인공(유나)을 통한 이야기의 전달은 없습니다.

오로지 3명 화자들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그들의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통해 유나가 이야기하는 행복의 타당성, 유나의 의심스러운 행위들을 추적합니다.

소설의 화자들은 각각 자신들의 과거를 회상하며 시간의 순서가 뒤죽박죽되기도 합니다. 중반까지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과 유나의 연결점을 찾고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느라 조금은 애를 썼습니다.

익숙해지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빠 인형에는 신비한 힘이 있었다. 잠들어 있을 땐, 악몽과 가위로부터 지유를 지켜주었다. 깨어 있을 땐, 무엇이든 견디고 버틸 힘을 주었다.
-402

 

완전무결한 행복을 위한 뺄셈


   결국 유나도, 재인도 서로를 대하는 감정에서는 8살, 6살의 어린아이에서 한 발자국도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누려야 할 행복을 재인이 빼앗아 갔다는 그녀(유나) 안의 믿음이 증오로 변했고 어렸을 때의 결핍이 유나를 '완전한 행복'에 집착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대학시절 동거하던 남자 친구, 전 남편, 아버지, 현 남편의 아들.

자신의 행복에 방해되는 사람들을 가차 없이 처단했어요.   
 
   첫번째 살인 후, 그녀의 심정에는 변화가 없었을까요? '행복은 뺄셈 '이라는 믿음은 변하지 않았나 봅니다. 살인이 자신의 행복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깨달음에는 도달하지 못했나 봅니다.

자신의 행동이 항상 옳다고 믿는 그녀이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자신의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작업들을 계속했나 봅니다.  
 
   남의 탓으로 돌리는 성향이 강한,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행복하기가 불가능합니다. 

약속대로 이모는 늘 곁에 있었다. 아가, 라 불러 꿈을 깨워주고, 괜찮다고 말해주고, 울지 말라고 안아주고, 아빠 인형을 가지고 청연으로 달려와주었다. 이모가 애타게 부르는 지금, 자신은 벽 너머에서 망설이고만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 이모가 부르잖아
요망한 생쥐가 말했다. 지유는 숨을 들이머셨다. 손을 뻗어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485

 

회복 탄력성이 소멸된 유나 - 하와이 카우아이 섬의 사례

   하와이 군도의 서쪽 제일 끝 섬의 이름은 '카우아이'입니다. 이곳은 3만 명 정도의 인구로 아주 가난했다고 합니다.

1954년 이곳에서 200여 명의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추적조사가 실시됐습니다. 실험에 뽑힌 아이들은 모두 불행한 가정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었어요.

알코올이나 약물에 중독된 부모를 둔 아이.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
극빈층이었으며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부모를 둔 아이 등등.

행복과는 거리가 먼 아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연구의 결과는 놀랍게도 그중 1/3이 친절하고 사회성도 갖춘, 올바른 어른으로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행복하기 힘든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어떻게 올바른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힘든 환경에서 살았지만, 그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고 놀라운 회복 탄력성을 갖춘 사람으로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는 믿음,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옆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준 단 한 명의 어른, 그 어른을 통해 자신과 부모의 정신적인 불행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유나도 그럴 수 있었을까요? 어렸을 때 그녀를 맡아 키웠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할머니는 엄격한 규칙을 적용해서 시험을 보고 결과에 따라 벌을 주는 식의 교육을 시켰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지만, 할머니의 교육방식에 반기를 들지 못했어요.

유나가 불행한 상황에 있어도 방관을 한 것이었죠. 그렇게 어린 유나는 자신이 행복한 가정에서 벗어나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원인을 찾습니다.

결론은 언니가 자신의 행복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합니다. 언니 재인에 대한 미움은 평생에 걸쳐 극복될 수 없었습니다. 
 

제주 팬션 고유정 살인사건과 소설, '완전한 행복'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정유정 소설가는 고유정 살인사건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책 속에 소개된 유나의 행동방식들이 현실의 사건 속 범인의 모습과 매우 유사합니다.

  작가만의 창조된 세계이지만 그 실마리를 제공해 준 것은 고유정의 전남편 살인사건입니다.
 

  • 고유정의 전남편은 소송을 통해 어렵게 아들을 만날 수 있는 면접교섭권을 얻음. 2년을 끌다 겨우 부자가 만나게 되는데 그때 살해됨 
  • 인터넷에 검색을 통해 뼈 발골 법, 뼈 무게 등등 범행과 관련된 내용들을 알아보고 범행도구들을 구매
  • 사진을 찍습니다. 고유정은 범행과 관련된 사진을 찍습니다. 범행 시간을 암시하는 시계, 수면제를 섞은 카레 등등   
  • 의붓아들의 질식사

 
유나의 이야기가 곧 고유정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카레는 굴라시가 됐고, 완벽한 행복을 기억하려는 듯 범행 직전 사진들을 찍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의 사건에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견고한 세계관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녀는 진저리를 쳤다. 지옥이 아니라 지옥의 지옥까지도 따라올 꽃노래의 정체가 뭔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저것은 아버지의 노래가 아니었다. 스스로 부르는 노래였다. 
<...>
자신은 유나와 다르지 않았다. 자신을 움직이고 있는 것 역시 여덟 살짜리 어린아이였다. 꽃노래를 부르는 아이의 망령이, 죽음의 위기에 도달한 이 순간까지 자신의 사지를 결박하고 있다는 점에서.
-503

 

소름 끼치는 뺄셈의 행복

   결국 행복의 정의는 뺄셈이 될 수 없습니다. 욕망을 낮추는 것이 아닌 유나와 같은 사고방식으로 관계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어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인간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불행의 프레임을 간직하고 살아온 소녀. 그녀의 인생이 긍정적으로 변화될 수 있던 시점은 어디였을까요?

자아가 완성되기 전의 아직은 어릴 때 그럴 가능성이 있을 것입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회복탄력성이 떠오른 이유입니다.

성장을 못한 자아. 나르시시스트의 미성숙한 자아의 시선으로 본 행복의 정의.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남의 탓만 하는 사람에게는 애당초 행복이란 말이 어울릴 수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마무리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오래 전,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과 '종의 기원'을 초반부만 읽고 포기한 기억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시도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이번에는 성공할 거라는 느낌이 듭니다.

모든 소설이 그러하 듯 서사를 쌓아가는 중반까지는 버터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았으니까요.

이상으로 '완전한 행복' 리뷰를 마칩니다. 



 

 

완전한 행복:정유정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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